존경하는 뱅상 베르제 총장님, 에두와르 위송 파리 대학구 부구장님, 또 여러 장관님과 교수님, 내외 귀빈 여러분, 그리고 미래 세계를 열어갈 청년 학생 여러분, 저는 오늘 여러분 앞에서 이렇게 훌륭한 대학에서 학위(docteur honoris causa)를 받게 된 것을 매우 영광스럽게 생각하고 매우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이 자리에 여러분께서 함께 해 주신 것을 대단히 고맙게 생각합니다.
파리 디드로 대학은 자연과학과 인문학이 ‘큰 방앗간’(Grands Moulins) 안에서 어우러진 융합적 지성의 산실로 높은 학문적 명성을 자랑하고 있습니다. 이 대학에서 학위를 받게 된 것을 대단히 영광스럽게 생각합니다. 또한 프랑스는 물론이지만 유럽한국학의 메카라는 데서 저는 이 대학에 깊은 애정을 갖게 됩니다. 이 자리를 빌려서 한국학과 학생과 교수 여러분, 관계된 분들에게 격려와 함께 감사를 드리고 싶습니다.
오랫동안 기업인과 정치인으로 살아온 제가 예술ㆍ문학ㆍ철학ㆍ고전학 명예박사학위를 받게 된 것은 특별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또 그런 점에서 매우 기쁘게 생각합니다.
함께 하신 내외귀빈 여러분, 인류의 근대를 연 프랑스 정신은 무엇보다도 인간에 중심을 둔 인문정신이라고 생각합니다. 바로 이 대학을 상징하는 디드로(Diderot)의 정신이기도 합니다. 인간의 이성에 대한 믿음이 자유롭고 평등한 세계를 열었으며, 숭고함을 향한 열정이 인류에 대한 박애로 꽃을 피웠습니다, 그 정신이 지난 300여 년간 전 세계로 불길처럼 번지며 인류의 이상에 불을 붙였습니다.
인간의 존엄성과 민주주의 그리고 과학적 합리성에 대한 신념은 압제와 빈곤, 무지의 굴레로부터 인간을 자유롭게 하는 역사를 발전시켜 왔습니다. 최근 중동의 자스민 혁명이 보여주듯, 지금도 진행 중인 역사입니다.
오늘날 세계화, 정보화로 지구촌이 점점 하나로 통합되면서 인류는 하나의 운명 공동체가 되어 가고 있습니다. 프랑스의 지성 에드가 모랭은 일찍이 ‘지구는 우리의 조국’임을 강조한 바가 있습니다. 한국과 프랑스는 모두 지구를 조국으로 삼아 인류 보편의 가치를 구현하는 의무를 지니고 있고, 또 함께 이 길을 걸어갈 것입니다.
지구촌 공동체에서 함께 해결해야 할 문제가 너무나 많습니다. 핵과 테러의 위협, 에너지와 식량위기, 빈곤과 종교, 인종 갈등 등 많은 문제들이 우리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중에서도 기후변화는 지구상 모든 생명체를 위협하는 역사상 가장 거대한 도전입니다.
환경을 보호하자면 현재의 경제체제를 희생해야 한다는 시각도 있습니다. 그러나 나는 환경과 경제의 양립이 필요하며 또 그렇게 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2008년 대한민국이 제시한 저탄소 녹색성장의 국가비전은 이러한 시각에서 나온 새로운 패러다임입니다. 녹색기술과 청정에너지로 환경을 보호하고 신성장동력과 일자리를 창출하여 성장도 함께 꾀하자는 것입니다. 이것은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한 유일한 길이자, 세계 모든 나라가 걸어가야 할 길이기도 합니다.
한국은 매년 GDP 2%를 녹색분야에 투입하도록 결정을 했습니다. 작년에는 세계에서 가장 먼저 저탄소 녹색성장기본법을 공포해서 법적ㆍ제도적 기반도 세계 처음으로 갖추었습니다. 또한 2020년까지 온실가스 배출 전망치 대비 30%를 줄이기로 결정을 했습니다. 이것은 국제사회가 온실가스 비의무감축국에 권고하는 세계 최고의 목표치이기도 합니다.
나아가 개발도상국가의 환경 문제 해결을 돕기 위해서 ‘글로벌 녹색성장 연구소’(Global Green Groth Institute)를 설립했습니다. 이미 덴마크를 위시한 여러 선진국들이 여기에 적극 참여하고 있습니다.
나는 2009년 말 코펜하겐에서 기후변화 당사국 총회에 가서 ‘Me First’, ‘나부터 변화하자’는 주장을 역설한 바 있습니다. 서울 G20정상회의에 이어서 금년도 프랑스 칸 G20정상회의에서도 녹색성장이 핵심과제로 논의될 것입니다. 오늘 사르코지 대통령과 회담에서도 이 문제를 심도 있게 논의를 했습니다.
녹색성장은 이제 피할 수 없는 세계적인 흐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나부터 먼저 에너지를 절약하고, 나부터 먼저 온실가스를 줄여야 지구를 보존할 수 있습니다. 물론 화석연료에 의존해 온 생활 전반을 근본적으로 바꾸는 데는 어려움도 따르고 또한 시간도 걸릴 것입니다.
그러나 어차피 가야할 길이라면 먼저 적극적으로 앞으로 헤쳐 가며 위기를 기회로 만드는 지혜가 우리 인류에게는 필요한 것입니다. 기후변화의 위기는 우리가 한국인도 프랑스인도 아닌 지구인임을 일깨워주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우리는 인간과 기후를 함께 생각하는 ‘지구 책임적 시스템’(Planet-responsible System)을 함께 만들어 나가야 합니다.
프랑스 국민 여러분, 한국과 프랑스의 첫 만남은 1836년까지 거슬러 올라갑니다. ‘파리외방전교회’의 모방 신부가 선교 차 한국에 온 것이 프랑스와 한국의 첫 접촉이었습니다. 그 후 선교사들이 계속 한국을 다녀왔고 선교 중에 순교한 사람도 여럿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손에 의해서 프랑스 문화는 자연적으로 한국에 전달되기 시작했습니다.
그 중에서도 다뷜리 주교가 처음으로 한국-프랑스 사전을 만든 일은 양국 간의 관계를 크게 발전시킨 계기가 되었습니다. 이렇게 1836년 한 선교사에 의해서 만났던 그 이후 50년이 지나서 1886년 한국과 프랑스는 우호통상조약을 맺고, 양국 국민 사이에 어떤 사람이나 장소의 예외 없는 영원한 평화와 친선을 문서로 약속을 한 바 있습니다. 이것은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그 후 1950년 한국전쟁이 발발했을 때 프랑스 정부는 한국의 자유와 평화를 지키기 위해 즉각 파병을 했습니다. 269명의 프랑스 젊은이들이 잘 알려지지도 않고, 잘 알지도 못하는 동방의 한 나라에 와서 자유와 평화를 지키기 우해서 고귀한 생명을 바쳤습니다. 60년이 지난 오늘도 우리 대한민국 국민들은 그들의 희생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습니다. 아마도 한국인의 가슴에 영원히 살아 있을 것입니다.
파리 시민여러분, 한국은 5천년의 긴 역사와 문화를 가진 나라로 한국만의 독자적인 문화를 가지고 있습니다. 15세기 한국에는 한국의 르네상스를 꽃피웠던 과학자이며 문화예술가인 위대한 왕이 한분 계셨습니다. 그 세종대왕은 학자들과 더불어서 아름답고 과학적인 우리의 고유문자 한글을 창제하였습니다.
한글은 만든 사람과 제작원리가 알려진 세계 유일한 문자입니다. 언어학의 사치라고도 평가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이 때문에 유네스코는 1997년 한글을 세계기록문화유산으로 공인하고, 세계문맹퇴치에 기여한 사람에게 ‘세종대왕상’(King Sejong Literacy Prize)을 수여하고 있습니다.
한글의 간결함과 과학성은 한국을 IT 강국으로 만드는 데 크게 기여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훌륭한 한글을 일찍 가르치기 시작한 디드로 대학은 정말 선견지명 있는 대학이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 점에 다시 한 번 감사를 드리고자 합니다.
지금 앞에 부부가 모두 프랑스 문화예술훈장을 받으신, 피아니스트 백건우 씨와 배우 윤정희 씨도 와 있습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아울러 프랑스 문화계에 명실상부한 대부로서 10년간 문화부장관을 하신 자끄 랑 의원께서도 앞에 앉아 계십니다. 아주 고맙게 생각하고 특히 이번에 외규장각 반납에도 이 대학과 함께 협력해 주신데 대해 감사드립니다. 여기 또 귀하신 분들이 많이 앉아 계십니다. 이 자리를 빌려서 정말 감사 말씀 드립니다.
최근 들어서 한국과 프랑스의 문화교류가 매우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또 아시아 영화 중 한국영화가 가장 많이 개봉되고 있고, 연중 곳곳에서 특집행사가 열리고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있습니다.
한국의 대중음악과 드라마도 소수이긴 하지만 프랑스 젊은이들의 사랑을 받고 있고, 한국에서도 인기 있는 동방신기, 소녀시대가 여기 와서 공연한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이러한 대중 예술이 프랑스 젊은이들에게 많이 알려지고 사랑받기 시작한다는 것은 양국 발전에 매우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한국은 2002년 월드컵을 주최하기 이전까지는 세계 많은 분들에게 매우 조용한 아침의 나라라는 평가를 오랫동안 받아왔습니다. 수백 년 간 그런 평가를 받아왔습니다만 최근에 와서는 고요한 아침의 나라인 한편 매우 다이내믹한 나라이기도 하다고 알려지고 있습니다. 170여년에 걸친 양국의 만남이 이제 다시 한 번 꽃을 피우는 중요한 계기가 되고, 한층 더 성숙되길 바라고 있습니다.
금년 7월 1일부터 한-EU FTA가 발효됩니다. 저는 한-EU FTA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합니다. 다른 모든 나라들은 경제적 조건만 맞으면 FTA를 합니다. 그러나 EU는 민주주의와 인권, 법치를 따르는 나라들과만 FTA를 맺기 때문에, 대한민국과 EU가 FTA를 맺는다는 것은 매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제 170여 년 간의 관계에서 한국과 프랑스의 관계가 한 번 더 새롭게, 문화적인 측면을 비롯해 모든 측면에서 더 높은 관계로 발전될 수 있는 계기가 왔습니다.
사랑하는 청년학생 여러분, 한국과 프랑스는 거리가 멀지만 두 나라 사람 모두 마음이 뜨겁다는 점에서 닮은 점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한국 젊은이들은 뜨거운 열정을 가지고 있습니다. 또 세계 곳곳에 나가고 있습니다. 프랑스에서 공부하는 한국의 유학생들 숫자도 아마 세계에서 세 번째로 많을 것입니다. 또 많은 한국인 여행자도 프랑스를 찾고 있습니다.
한국과 프랑스뿐만 아니라 세계 모든 젊은이들은 그 나라의 젊은이이자, 바로 지구촌의 젊은이기도 합니다. 오늘날 젊은이들은 옛날 사람들과 달리 국경 없이 서로 마음을 소통하고 교류하고 있습니다. 나는 무한한 가능성을 가진 우리 젊은 학생 여러분들이 진심으로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새로운 역사의 장을 만들 수 있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하고 싶습니다.
나는 여러분과 많은 세대 차이가 납니다. 그러나 여러분 못지않은 뜨거운 열정을 지금도 갖고 있습니다. 잠시 제 과거 이야기를 해 볼까 합니다.
돌이켜 보면 나 자신의 삶은 언제나 끊임없이 열정과 도전의 삶이었습니다. 나의 젊은 시절에는 대한민국은 매우 가난했습니다. 불과 전후에 1인당 GDP가 45불이었습니다. 그렇게 가난한 나라였고 또 나는 그 가난한 나라의 더 가난한 사람으로 자랐습니다.
내가 제가 대학을 졸업할 때도 대한민국의 1인당 GDP는 100불에 불과했습니다. 그러니까 대한민국은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 중의 한 나라였습니다. 한국 전쟁으로 50년 전에 잿더미가 되기도 했습니다. 세계 여러 나라의 무상원조를 받아서 살 수 있었습니다. 무상식량으로 먹을 수 있었고 무상의약품으로 병을 치료할 수 있었고 또 보내준 헌 옷을 입고 살아왔습니다.
나는 젊어서 그랬기 때문에 “이 숙명과도 같은 가난을 씻어야겠다, 벗어나야겠다” 하는 결심을 여러 번 했습니다. 기업인이 되어서 아시아로부터 아프리카로 유럽으로 세계를 남보다 더 빨리 직접 체험할 수 있었습니다. 잘사는 나라와 못 사는 나라 사람을 모두 보면서 인류의 빈곤 문제에 대해서 많은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개인도 가난하지만 나라도 가난하고 또 잘 사는 나라를 보면서 그런 느낌을 늘 받아왔습니다.
다행히 나의 조국은 불과 반세기 만에 가난을 탈출하는 데 성공을 했고, 2009년에는 OECD 개발원조위원회(DAC)에 가입했습니다. 그래서 2차 세계대전 후 세계에서 유일하게, 원조를 받던 나라가 원조를 주는 나라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한때 남의 도움을 받고 살았던 한 청년이 지금은 원조를 주는 나라로 성장한 나라의 대통령이 되어서 이 자리에 서 있습니다.
나 자신의 일생도 그렇지만 대한민국 현대사 전체가 극적인 비약의 경험을 한 것입니다. 이러한 변화를 직접 겪은 것은 실로 한 사람이나 한 국가의 역사에서 참으로 흔치 않은 일입니다.
지난 해 서울G20정상회의를 개최하면서 나와 우리 국민은 깊은 감회에 젖었습니다. 이제는 우리의 기적을 세계 가난한 나라의 기적으로 만들어야 할 때가 되었다고 저는 G20회의에서 선언했습니다. 대한민국은 서울G20정상회의의 목표를 “위기를 넘어 다함께 성장”으로 삼고 개도국의 발전을 도모하는 개발의제를 처음으로 제안했습니다.
나와 대한민국은 세계와 어떻게 협력해야 하는지, 우리의 체험으로부터 자연스럽게 익혀 왔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가난한 나라들에게 어떻게 도움을 줘야 하는지 잘 알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같은 세대에게 도움을 받아왔기 때문에, 도움을 받는 나라의 입장도 도움을 주는 나라의 입장도 세계 어느 나라보다 잘 이해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대한민국은 우리의 개발 경험이 필요한 나라와 한국에서 이루었던 그 모델을 함께 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기존처럼 재정적으로 지원하는 것은 물론이지만. 개도국 스스로 성장잠재력을 확충하고 자생력을 기르도록 하는 새로운 개발전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진정한 도움은 도움을 받는 쪽을 따뜻하게 배려하면서 스스로 일어설 수 있도록 하는 것입니다. 단지 돕는 것이 아니라 자존심을 가지고 스스로 일어설 수 있게 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우리는 경험을 통해서 알고 있습니다. 나는 가난하고 배움도 적었던 나의 어머니로부터 많은 가르침을 받았습니다. 우리 어머님은 많이 배우지 못하셨습니다. 처절하게 가난했습니다.
어릴 때 나는 그 가난 속에서도 어머니는 이웃에 도울 일이 있으면 가서 돕도록 나에게 권유를 했습니다. 그러나 도움을 주고 어떤 도움의 대가도 받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집으로 돌아오는 나의 마음에는 한편 섭섭하기도 했지만, 아무리 가난해도 남을 도와줄 수 있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어릴 때 매우 중요한 배움을 깨우쳤던 것입니다. 이는 내가 자립심과 자주성을 갖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어머니께서 행동으로 보여주신 이런 가르침은, 나를 둘러싼 환경이나 남의 탓을 하지 않고 거듭되는 위기 속에서도 실패를 거울삼아 당당하게 성장하는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물론 저는 어려운 형편 탓에 낮에 일하면서 밤에 고등학교를 다녔습니다. 또 새벽 일찍 남의 일을 돕고, 청소를 하면서 대학을 다녔습니다.
그러나 나는 그러한 가난을 남에게 알리지 않았습니다. 주위에 있는 모든 사람들은 내가 그렇게 가난하고 어렵게 공부하고 있다는 것을 잘 알지 못했습니다. 지금도 가난은 자랑할 일도 아니지만 부끄러워할 일도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나는 30대 초 한 건설회사의 CEO가 되어서 중소기업을 세계적 글로벌 기업으로 키우는데 기여했으며, 국회의원과 서울시장을 거쳐서 2008년 대통령직을 수행하게 되었습니다. 가난을 극복해 온 지난 50년 동안 한 젊은이의 삶은 대한민국 조국의 역사와 거의 비슷합니다. 나는 지난 2009년 소외 계층에 대한 복지사업과 청소년 장학 사업을 위해서 내가 가진 재산을 모두 기부했습니다. 나에게 도움을 줬던 이웃과 나를 성장시켜준 조국에 보답하고자 하는 뜻이기도 합니다.
이제 대한민국은 성숙한 세계국가를 지향하면서, 인류의 평화와 번영에 기여하고자 합니다. 어려운 이웃과 세계를 돕는 인류애야말로 문명화의 가장 높은 표현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한국과 프랑스, 두 나라 젊은이들이 함께 손잡고 이 세계와 인류를 위해 위대한 일을 하기로 결심하는 것이야말로 내가 우리 젊은이들에게 바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어떤 여건 속에서도 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젊고 여러분의 이상이 뜨겁기 때문입니다.
프랑스 젊은이 여러분, 한국에도 한번 여행하시기 바랍니다. 거리가 멀어서 여행비가 많이 들지도 모르지만, 가장 값싼 여행을 통해서 한 번 방문하시기 바랍니다. 5천년 역사의 한국 문화를 와서 직접 느껴보시고, 또 지구촌의 미래를 짊어진 젊은이끼리 동양의 젊은이와 서구의 중심인 파리의 젊은이들이 함께 하는 기회를 가지기 바랍니다.
이 자리에 함께 하신 귀빈여러분, 저는 오늘 받은 이 명예박사학위가 파리 7대학이 나 개인에게 주는 마음의 선물이자, 프랑스가 대한민국에 보내는 깊은 이해와 신뢰의 선물이라고 생각합니다. 오늘날과 같이 두 나라 사이에 맺어진 따뜻한 형제애는 앞으로도 깊이 이어질 것이라고 봅니다. 조금 전에 총장께서 말씀하셨습니다만 소르본느 대학과 귀 대학이 함께 연구할 때 한국도 더 깊이 연구하는 주제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여러분 다시 한 번 정말 저에게 명예로운 학위를 주신 여러분과 대학 측에 감사를 드립니다. 또 오늘 이 자리에 이렇게 축하를 위해 함께 해주신 학생 여러분과 내외 귀빈 여러분, 학계의 교수님 여러분 모두에게 진심으로 마음에서 우러나는 감사를 드리고자 합니다.
여러분 감사합니다. Merci beaucoup (대단히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