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HOME > 함께 만드는 이슈 > 칼럼
대통령의 경제 성적이종화 | 2016.06.07 | N0.120

이종화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전 아시아개발은행 수석 이코노미스트


박근혜 대통령의 임기도 벌써 3분의 2가 지나고 있다. 대통령의 국정 평가에는 여러 기준이 있겠지만 국민들이 피부로 느끼는 경제 성과가 매우 중요하다. 현 정부의 경제 업적이 좋지 않다는 평가가 자주 나온다. 사실 경제성장률이 평균 3%에 미치지 못하는 것은 지난 어떤 정부에서도 없던 일이다. 그렇다면 과연 박근혜 정부의 경제 성적은 역대 정부 중 최악이라고 할 수 있을까.


한 정부의 경제 성과를 객관적으로 평가하는 것은 쉽지 않다. 널리 사용되는 ‘고통지수(misery index)’는 실업률과 물가상승률을 합한 것이다. 이 수치가 높으면 국민들이 피부로 느끼는 경제적 고통이 크기 때문에 정부의 경제 성적을 나쁘게 평가한다. 최근에는 원래의 정의에서 경제성장률을 뺀 고통지수도 많이 사용한다. 소득이 빠르게 증가할수록 국민의 고통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건강, 소득 분배, 여가, 환경 등 ‘삶의 질’에는 다른 중요한 요소도 많지만 이들은 수치로 표시해 비교하기가 쉽지 않다.


그러나 고통지수와 같은 경제지표로 한 정부의 성과를 평가하는 것에는 많은 문제가 있다. 첫째, 정책의 결과가 대통령 재임 기간인 5년이 지나서 나올 수 있다. ‘문민정부’ 시기인 1997년 11월에 외환위기로 국제통화기금(IMF)의 구제금융을 받고 혹독한 긴축정책과 구조조정을 거치면서 98년 경제성장률은 -5.5%, 실업률은 7%에 달했으나 이것을 그해 2월 취임한 ‘국민의 정부’ 탓으로 돌릴 수 없다. 비유하자면 환자의 병이 얼마나 위중했는가를 따지지 않고 수술 결과를 모두 의사의 책임으로 돌릴 수는 없다는 것이다.


둘째, 각 정부가 처한 국제 환경에 차이가 있다. ‘참여정부’ 시절은 경제성장률이 평균 4.5%로 높지만 정보통신기술 혁명과 중국의 고도 성장으로 당시 세계 경제도 호황이었다. 반대로 ‘이명박 정부’ 동안은 경제성장률이 3.2%로 낮지만 이때는 세계 금융위기로 모든 국가의 경제 성적이 좋지 않았다. 우리 경제가 수출에 많이 의존하기 때문에 세계 경제 환경을 고려해 정부의 경제 성적을 평가해야 한다.


셋째, 경제 구조와 정책 환경도 중요한 변수다. 경제 발전 초기에는 노동력이 빠르게 증가하고 투자수익률도 높고 선진 기술을 쉽게 모방해 생산성 증가도 빠르다. 그러나 경제가 성숙 단계로 접어들면 인구증가율과 투자수익률이 낮아지고 최첨단 기술을 따라잡기도 힘들다. 결국 성장률이 낮아질 수밖에 없다. 높은 산을 오를 때 언덕이 가팔라지면서 속도가 점점 느려지는 것과 같다. 또한 5공화국 같은 권위주의 체제에서는 다른 가치들을 희생하면서 경제 정책을 쉽게 수행할 수 있었지만 이제는 국회의 견제를 많이 받고 민간 영역의 비중이 매우 높아져 모든 경제 성적을 대통령과 정부의 책임이라고 하기 어렵다.


이런 문제점들에도 불구하고 81년 이후 역대 정부의 경제 성적을 양적 지표로 평가해 볼 수 있다. 경제성장률까지 고려한 고통지수의 값으로 비교하면 국민의 정부, 이명박 정부 시절이 가장 나쁘다. 그러나 어려운 환경에서 열심히 노력한 정부의 경제 성적을 나쁘게 평가하기는 어렵다. 세계 경제 환경을 고려해 IMF가 분류한 39개 선진국 그룹의 평균 고통지수를 구해 한국 각 정부의 고통지수와의 차이를 비교하면 참여정부의 성적이 이명박 정부보다 훨씬 떨어진다. 물론 어떤 국가들과 비교하는가에 따라 결과가 다를 수 있다.


대통령의 경제 성적은 결과만으로 비교하기가 어렵기 때문에 하버드 대학의 그레고리 맨큐 교수는 대통령이 재임 시 제대로 된 중요 정책들을 얼마나 열심히 수행했는지를 기준으로 평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금융실명제, 한·중(韓中) 수교,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처럼 당장은 아니더라도 우리 경제에 장기적으로 상당한 영향을 주는 중요한 정책을 수행했다면 평가에 좋게 반영해야 한다. 그러나 어떤 정책이 제대로 된 정책인지 평가하기가 쉽지만은 않다. 전문가들과 국민들의 평가가 많이 다를 수 있다.


결국 대통령의 경제 성적은 노력과 결과를 모두 합쳐서 평가해야 할 것이다. 재임 기간 동안 좋은 정책을 실행하기 위해 얼마나 최선의 노력을 했는지와 국민들이 피부로 느낄 수 있는 성과를 얼마나 냈는지를 합쳐서 퇴임 후에 평가해야 한다.


박근혜 정부의 경제 성적은 아직 평가하기 이르다. 성과를 낼 수 있는 시간이 아직 남아 있다. 그러나 계속되는 불경기로 국민들의 고통은 크고 기업 구조조정, 노동개혁, 인구 고령화, 기술 혁신 등 많은 난제가 있지만 제대로 된 경제 리더십이 보이지 않는다. 혹시라도 조기에 레임덕이 시작돼 경제 정책은 표류하고 국회는 정쟁만 하다 인기 영합의 포퓰리즘 정책들을 들고 나올까 걱정이다. 어려운 국내외 여건이지만 처음의 각오로 돌아가 들메끈을 고쳐 매야 할 것이다.


 <중앙일보>에 기고한 칼럼입니다
원문보기: http://news.joins.com/article/20131314

  • facebook
  • twitter
댓글쓰기